온달, 바보가 된 고구려 귀족

온달, 바보가 된 고구려 귀족

  • 자 :이기담
  • 출판사 :푸른역사
  • 출판년 :2004-11-29
  • 공급사 :누리미디어 전자책 (200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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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설화에 갇힌 온달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주인공들이었다. 시장거리에서 구걸하던 바보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맹장으로 변신하는 극적인 성공 스토리, 그리고 부와 영화를 초개처럼 내던진 평강공주의 굳은 의지와 뜨거운 사랑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을 만나는 장은 늘 동화책이나 교과서였다. 실제로 지금까지 온달 이야기에 대한 연구는 주로 국문학계가 전담해왔다. 국문학계에서는 온달 이야기를 기본적으로 설화라는 시각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온달을 단순히 설화 속 주인공으로밖에 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또한 하늘과 땅 같은 신분의 격차를 넘어선 온달과 평강공주의 결합 등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들이 온달을 설화에 가두었다. 역사의 무대로 온달을 불러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온달이 과연 바보였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설화가 가진 픽션으로서의 성격을 고려하려고 하다 보니 소설가적 감각이 요구되었고, 엄연한 설화를 역사학의 잣대로 엄정히 분석해야 될 필요를 좇으려니 자연히 역사학자의 냉철한 시각이 필수적이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방법, 그것은 역사소설가 이기담과 역사학자 임기환의 만남이었다. 이 두 사람은 온달을 설화라는 테두리에서 끄집어내 역사의 전면에 세우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였다. 온달은 바보가 아니라는 것, 그는 6세기 고구려 사회에 실존한 하급 귀족 출신의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역사와 설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온달의 참모습을 더듬어보았다. 설화와 역사의 결합인 셈인데, 이러한 시도는 온달 이야기에 역사성을 입혀주는 동시에, 민족·계급·이데올로기 등 기존의 역사학이 파고들어온 거대담론의 무거움을 벗겨내어 인문학의 다변화를 꾀하고 역사학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온달은 바보가 아니라, 고구려의 하급 귀족이었다! 온달 이야기에는 설화와 역사적 사실이라는 이질적인 요소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대체로 온달과 평강공주가 만나게 되는 부분까지는 허구일 가능성이, 온달이 사냥대회에 나가 무공을 세우고 벼슬을 얻어 전쟁에 나가 전사하였다는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책은 《삼국사기》〈온달전〉을 해체하여 6세기 고구려 사회에 비추어보며 온달이 실존했던 인물이며 바보가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고구려는 항상 봄 삼월 삼짇날이 되면 낙랑의 언덕에 모여 사냥하는데,… 온달이 기른 말을 가지고 따라가니, 그 내달림은 항상 앞장에 있었고, 잡은 바 또한 많아서 다른 사람이 그만 한 자가 없었다. 왕이 불러와 이름을 묻고는 놀라고 또 기이하게 여겼다.” -당시 고구려는 장수왕대에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왕은 평양 천도를 단행, 국내성에 기반을 두었던 구귀족 세력을 밀쳐내고, 신흥 세력을 등용하여 왕권을 키워나갔다. 고구려는 사냥대회와 같은 국가적 행사를 통해 인재 선발에 열심이었고, 온달은 바로 그러한 기회를 포착, 무예에 두각을 나타내 등용의 문고리를 움켜쥐었던 것이다. “오직 신라가 우리의 한강 이북의 땅을 갈라 군현으로 삼으니, 백성이 통한하여 일찍이 부모의 나라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 신을 부족타 아니하시고 군대를 주신다면 한번 가서 반드시 우리 땅을 되찾겠습니다.” -고구려는 요동 지역에서 세력을 유지하는 한편, 남쪽으로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유역을 회복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온달은 한강 유역의 수복이라는 당시 고구려인의 숙원을 실현시켜줄 대망의 인물이었다. “금팔찌를 팔아서 밭과 집, 노비와 소와 말, 그릇 따위를 사서 쓸 거리가 두루 갖추어졌다.” -당시 고구려는 경제 발전으로 인하여 황금이 신분적 의미보다는 교환가치를 갖는 재화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맞추어 부민층이 새로 성장하였는데, 이들은 정치적 진출을 꾀했을 것이며 온달은 바로 그러한 사회 변동 과정에서 떠오른 하급 귀족이었다. 1,400년 동안 이어진 온달 이야기의 질긴 생명력 장구한 세월 동안 온달 이야기는 시대적 가치와 계층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되어왔지만, 바보의 이미지에 담긴 친근함, 비극적 영웅, 신의, 애국심, 온달과 평강공주와의 안타까운 사별 같은 요소는 면면히 이어졌다. 이것이 바로 온달 이야기 속에 꿈틀거리는 생명력의 근원이다. 특히 온달이 비극적인 영웅이었다는 점이야말로 온달 이야기가 지닌 강력한 힘이었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영웅을 갈망하는 소망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위대한 사람, 성공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책들을 찾아 읽는다. 온달은 자신의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라에 빼앗긴 땅을 되찾겠다는, 고구려인 전체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출정했다. 그의 비극적인 최후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혹은 붓끝을 휘두르며 쉴 새 없이 온달을 이야기해온 것이다. “영웅은 희생을 통해 가장 행복한 삶을 빚을 수 있다는 진리를 몸소 드러내는 사람이고, 사람들은 이런 영웅에 매료된다”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Gosep Cambell)의 표현처럼, 온달은 죽음으로써 삶의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놓았다. 온달의 이야기는 근대국가 만들기의 주요 수단인 애국심이란 요소가 첨가됨으로써 새 얼굴을 얻게 되었다. 남한과 북한에서 재생산된 ‘애국 영웅’ 온달의 모습 속에는 분단국가의 민족과 국가 논리의 모순이 숨어 있다. 스무 가지 온달, 서른 가지 온달 설화는 구전되든 문자로 전해지든 전승되는 과정에서 여러 번의 변형을 거치게 된다. 특히 역사적 인물에 관한 설화가 만들어질 때는 창작집단의 시각이나 가치 체계가 내용을 결정한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개인적 편차 못지않게 계층적 편차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 양반들의 온달 지배층은 기록 문학을 통해 그들의 이념이나 지향하는 바를 민중에게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탄생된 의 이란성쌍둥이들을 짚어보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명심보감》에 실린 온달 이야기와 《해동악부(海東樂府)》에 실린 이 그것이다. 양반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온달의 우국충절을 찬양하고 평강공주의 신의와 열녀성 등을 강조함으로써, 유교적 가치관을 고취하려고 애써 노력하였다. * 서민들의 온달 서민들은 구비설화를 통해 비극적 영웅 온달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소박하게 드러내었다. 그들은 온달 이야기의 역사적 배경을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 대신 설화적 문맥만을 표층적으로 전승하는 데 치중하였다. 에 자세히 드러나지 않는 온달과 신라군과의 전투 장면이 매우 생동감 있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영웅 온달의 패전과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민중의 정서가 반영된 결과다. * 북한의 온달 북한에서의 온달은 착취당하고 억압받던 평민이 신분적 취약성을 극복하고, 나라와 인민을 구한 영웅으로 떠올랐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민의 계급투쟁 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국가’라는 주체가 온달을 선전선동의 객체로 이용한 것이다. * 남한의 온달 남한에서는 해방 이후 국가안보와 체제 유지의 기틀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온달의 애국심을 의도적으로 강조하였다. 1980년대까지도 온달은 교과서에 등장하였으며, 그 이후에도 여전히 책과 연극, 마당극, 노래 등등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단양과 아차산에 살아 숨쉬는 온달의 흔적 이 책에는 온달의 흔적을 찾아 아차산을 오르내리고 단양 곳곳을 누빈 현장답사의 흔적이 역력하다. 본문 가득 시원시원하게 배치한 온달 전승지 사진들은 마치 스스로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특히 단양은 온달 전승지의 보고(寶庫)여서 온달산성을 뿌리로 하여 가지가 뻗듯 구석구석 온달의 모습이 아로새겨진 장소가 숱하게 널려 있다. 그런가 하면 아차산에 있는 온달주먹바위나 단양의 장발리 선돌과 같은 전승지들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 머물던 장소라든가 그와 비슷한 사물에 이름을 붙여나감으로써 전설이 새롭게 탄생하는 모습을 웅변한다. * 주요 온달 전승지 · 온달산성-온달이 신라군의 침입 때 이 성을 쌓고 싸우다가 전사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옛 석성(石城). · 장발리 선돌-온달이 온달산성에서 신라의 대군과 한창 싸우고 있을 때, 온달의 누이동생이 온달을 도우려고 성으로 달려오다가 성에 조금 못 미친 장발리에 도착했을 때 온달장군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 선 채 돌이 되었다고 하여 붙은 이름. 또 온달이 온달산성을 쌓기 위해 석재를 마고할멈에게 부탁하여 가져오도록 했는데, 돌을 운반하는 중에 온달장군이 패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마고할멈이 들고 있던 큰 돌을 냅다 팽개쳐 땅에 세로로 박혀버렸다는 설화도 전해짐. · 태쟁이 묘-현재로선 온달 묘인지 단순한 민간신앙 유적인지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우나, 오랜 기간 단양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온달 묘로 여겨져옴. · 공주굴-온달과 평강공주가 성을 쌓을 때 피곤도 풀고 사랑도 나눴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굴. · 최가동-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으로, 언제 신라군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고구려군이 고향에 두고 온 처자식을 그리며 온달산성에서 내려다본 마을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져 붙인 이름. · 온달동굴-온달이 무예를 연마한 동굴. · 대진목-일명 장군목이라고 함. 온달이 신라군을 맞아 진을 치고 대치하던 곳. · 면위실-온달이 신라군과 접전하던 곳으로, 온달이 여러 번 신라에 포위되는 위기를 맞았으나 이곳에서 전사 위험을 피했다 하여 붙은 이름. 미완성의 열린 설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다 온달 이야기에서 설화라는 구름을 걷어내고 보니 처음 상상했던 온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동화책에서 보았던 어수룩하고 바보스런 온달 대신 고구려 옛 땅을 되찾고자 제 목숨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고구려의 어느 용맹스런 장수가 남았다. 그러나 한편 온달이 바보가 아니었다는 점, 평강공주와의만남에도 허구가 섞여있다는 사실을 역사적 논증을 통해 밝힘으로써 온달 이야기가 계속 설화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남긴다. 책의 말미에 소설가와 역사학자의 대담자리를 마련하여 온달 설화의 미래를 내다보았다. 설화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정서와 시대상을 투영하는 거울이라 볼 때, 앞으로도 다양한 모습으로 재창조될 여지를 가늠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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